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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5일(목) 은혜의밤 박종우 안드레아 신부님
 
성령쇄신봉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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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6 21: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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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쇄신봉사회님의 또 다른 갤러리 (10개)
                                    
 










대전교구 원로사제이시며, 자비의 선교사로 활동중이신 박종우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자비"를 주제로 은혜로운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자비란 무엇일까요? 성경의 내용을 보면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비에 관해 눈을 뜨면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더 크게 느낄 수 있으며,

성경을 읽을때 더 큰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에게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돌을 던지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구유에 뉘어졌습니다. 제일먼저 한 일은 가장 지저분하고 형편 없는 곳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이 세상을 깨끗하게 하시려고 그 곳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려고, 인간의 나약함 속에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 옛날 시대적 상황을 보면 제일먼저 더러워지는 곳은 발입니다. 그래서 어느 집이나 문앞에 물항아리가 있어 발을 먼저 씻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초대로 집에서 음식을 잡수실 때 죄많은 여인이 찾아와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습니다.

또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카락으로 딱아 드렸듯이,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 듯이, 우리는 고회성사로  깨끗해 집니다. 

죄로 넘쳐나는 혼탁한 세상속에 살면서 우리는 나도 모르게 저절로 그 속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 없이는 살아도 돈 없이는 못 살아요." 세속의 즐거움에 취해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일로, 즐거움으로 노는데 빠져 여러가지 핑계를 대며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된 신앙인은 "돈 없이 살아도 하느님 없이는 살수 없다."고 해야 합니다.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모든 것을 불편하게 느낌니다.  이러한 교만과 오만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면, 그곳에 성령께서 계실까요?

새로운 변화의 모습은 다른 사람에게 돌을 던지기 보다,  서로의 발을 씻어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유다가 아닌 베드로 처럼 돌아서야 할때 돌아설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3번이나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실 때 세번이나 사랑한다고 고백한 베드로 처럼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계속 반복되는 죄에 대해 고해성사를 할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자비로 이끌고 계십니다. 성령이 우리를 이끌고 있음을 깨닫을때 우리는 참 신앙인이 되는것입니다.

진정한 자비를 우리가 깨닫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주님, 하느님은 약속을 꼭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일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또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그러한 하느님을 보면서 살아 갑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때 "다 이루어 졌다"고 하신 것 처럼 하느님은 약속을 꼭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나자렛에서 희년을 선포하신 것처럼 말씀은 우리 안에서 꼭 이루어짐니다.

예수님께서 철저히 하느님 말씀을 지켰듯이, 하느님은 끝까지 우리를 구원하시고, 끝까지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다른 사람과의 만남은 우연이 없습니다. 끝까지 한사람 한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의 만남을 만드셨습니다.

엠마고로 가고 있던 두 제자가 주님께서 주신 빵을 먹고 눈을 떠 예수님을 알게되었으며, 예수님의 무덤 앞에서 슬피울던 마리아에게 주님이 다정히 마리아야라고 부르시자 주님이심을 알게되었듯이

우리가 슬픔에 젖어 있을때 주님께서 다정히 우리를 부르듯이 나를 불러보세요, 사도요한아 ~~~, 주님의 목소리가 나에게 들어오게

주님의 목소리를 느끼면 슬픔이 기쁨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부활의 그 기쁨으로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으로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베드로가 성령으로 가득차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하자, 세계 각지에서 온 동포들이 각자 자기나라 말로 듣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해야합니까?" 라고 묻자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를 용서 받으라고 합니다.

성령은 협조자로 우리를 이끌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물과 같아서 우리 각자의 모습 속에 각각의 형태로 우리 안에 존재합니다.

각자 안에 있는 세속적인 것들을 쓰레기 처럼 버려야 그안에 성령께서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지만 많은 시련을 겪고, 그 시련으로 인해 쓰러지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사랑하는 우리를 단련 시키기고, 더 다지기위해 시련을 주심니다. 시련을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위해 시련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주고 협력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못 일어서는 사람들을 일어나게 일으켜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고 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나를 통해서 증인이 돼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중공군의 침입으로 흥남부두에서 미군들이 철수를 할때 였습니다. 그 부두에는 수만명의 피난민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그 때 군함의 선장은 결단을 내립니다. 배안에 있는 모든 무기들을 바다에 던져 넣고

피난민들을 모두 태우고 거제도로 철수 합니다. 그때 흥남부두 앞바다는 지뢰가 깔려 있는 매우 위험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배는 무사히 빠져나갑니다.

그리고 "흥남부두 철수 때 이 배의 키를 잡으신분은 하느님 이였다."고 고백을 합니다. 선장은 고국으로 돌아가 바로 제대를 하고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50년 후 그분은 세상이 주는 상을 받기위해 그리고 치료를 받기 위해 딱 2번 수도원에서 나오셨습니다. 그런 수도원을 뒤 이을 수도자가 없어 고령으로 더이상 꾸려 나갈 수가 없게 되자

한국의 왜관에 있는 수도원에 인계를 하게됨니다. 한국 수도원에서 인계를 받기위해 그곳으로 간 수도자를 반갑게 맞으시면서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지난날 한국과의 인연을 말씀하셨어 세상에 알려 지게 되었습니다. 만남이란 이렇게 우연이 없습니다. 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의지와 자비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우리가 하는 이 일들이 하나도 헛된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며,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하나도 헛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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